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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나루(熊津)문화 culture/역사 전통 history tradition 2021. 4. 29. 19:52
곰나루국민관광단지의 웅비탑
충청남도 개도1백주년 기념하여 하여 높이 19.8m로 웅비의 나래를 펴는 현대적 미래재지향적 의미의 조형을 하였다. 탑신부는 치미, 당간지주 등의 전통문화의 조형성에 봉화의 날개, 무령왕릉 왕비관장식 같은 백제문화의 전통을 형상화하였다. 벽면은 충남의 수려한 산수를 그렸다. 웅비탑 뒤쪽에 등나무꽃 달콤한 자주색 향기가 벌을 꼬득이고 그 사이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왕비관장식이 찬란하다.
웅비탑 길건너 금강변의 곰나루를 둘러싼 솔밭을 보니 안개젖은 새벽에 오고 싶다. 솔숲으로 난 산책길을 걷는 아침운동꾼은 참 건강하다.
나루엔 웅진수신단(熊津水神之壇)이 설치되어 있다. 웅진단 제사는 곰신에서 수신으로 변화되었다. 조선에서는 연2회 산천제와 함께 지냈는데 '세종실록'에 곰신이 아닌 용왕신에 대한 제사라고 규정지었음에도, 민간에선 곰에 대한 제사라고 생각하여 일제 때까진 정월대보름날 곰이 좋아하는 도토리와 마를 젯상에 올렸다고 전한다. 2011년 웅진단건물터를 발굴하였다.
제비꼬리를 닮은 데서 유래했다는 강건너 연미산(燕尾山)을 바라보고 토종 흰민들레가 활짝 웃는다. 유구한 역사의 숨결이 유유히 흐르는 금강가에 국토를 뒤덮은 서양민들레가 노랗게 파고들지 않아 다행스럽다. 연미산에는 40년 역사의 자연미술을 비엔날레로 전시되는 자연미술공원이 꾸며져 있다.
공주에 전하는 곰나루 전설이 있다. 제비꼬리를 닮은 데서 유래산 연미산(燕尾山)에 살던 암곰 한 마리가 인간을 흠모하여 강을 건너와 남편감을 찾았다. 2010년 공주대교수 김경화 작
마침내 마을의 청년을 납치해다 결혼을 하였고 새끼 둘을 낳고 살던 남편은 인간세상을 그리워하다 도망을 하였다. 여기서 나뭇꾼과 선녀 이야기를 뒤집어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럽다. 어미곰과 새끼들은 하염없이 남편과 아비를 기다리지만 결국 돌아오지 않자 금강에 몸을 던졌다. 그리움과 애처로움이 뒤섞인 눈망울이 가득한 설치물은 2010년 김석우의 작품이다. 곰나루 전설과 비슷한 민담이 <곰과 혼인한 사람>·<새끼를 잃은 곰의 성질> 등의 이름으로 각지에서 채록되었다.
어미곰의 외로운 혼을 기리기 위해 곰을 모셨다. 이곳 웅신단의 웅신단비(熊神壇碑)에도 곰나루 전설이 기록되어 애절함을 더하고 있다. 웅신으로 추정되는 웅신석상이 발굴되어 공주국립박물관에 보존되어 있다. 백제가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것이 475년이므로 천오백년간 면면히 전해오는 이야기다.
나루터 상류쪽으로는 공주보와 채죽산(蔡竹山)이, 하류쪽으로는 취미산이 이어진다. 채죽산(170m)은 죽산현감(竹山縣監)을 지낸 채씨(蔡氏)의 묘가 있는 산이라는 데서 유래하였다.
본래 고마나루라 부르다가 곰나루가 되었다. 한자어로 웅진(熊津)이다. 신라 신문왕 때 웅천주(熊川州), 경덕왕 때 웅주(熊州), 고려 태조때 공주(公州)가 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진다. 나라가 위태로운 1010년에 고려 현종이, 1624년에 조선 인조가 은신하였다. 660년에 당(唐)의 소정방이 공격을 하였고, 예식진의 배신으로 의자왕은 당에 포로가 되었다. 이후 웅진에 웅진도독부가 설치되었으며, 2000년에 의자왕봉토식이 부여 능산리 고분군에서 있었다. 백사장엔 450여 그루의 소나무가 수려한 금강과 연미산이 한데 어우러져 경관을 이룬다. 대한민국 명승21호로 지정되었다.
천제 환인(桓因)의 아들 환웅(桓雄)이 범을 물리친 곰이 변한 웅녀(熊女)와의 사이에서 낳은 단군(檀君)이 조선이라는 나라를 건국하였다. 호족(범)과의 경쟁에서 승리한 웅족(곰)의 승리라고 본다면 곰신을 숭상하는 백제인은 혈맥상 적통이 아닌가. 백제인의 이러한 자긍심이 나당연합군에 의해 하루아침에 역사의 이슬이 되어버린 서러움이 곰나루전설로 변이되진 않았을까. 그러고 있는 사이에 송화가루만 난분분하니 세상이 노랗다.
곰나루에 와서 / 이은봉
나는 내가 양인 줄 알았다 염소인 줄 알았다 외나무다리를 건너며 온종일 종이 나부랭이나 씹으며 사는 줄 알았다
오늘 아침에야 나는 비로소 알았다 내가 곰인 것을 알았다 미련 곰텡이로 사는 것을 알았다 곰나루에 와서 알았다.
―《한남문학》 2015년 가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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