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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진주 청곡사(靑谷寺)
    문화 culture/불교문화 Buddhist culture 2025. 3. 15. 22:22

    월아산 청곡사 일주문 지나 뒤돌아본다

    왼편 부도밭 지나 

    방학교(訪鶴橋)에서 보면 금강문 환학루 범종각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고목과 석계가 참 좋다

    금강문인지 천왕문인지 빈집이다. 석축의 푸른 이끼와 잡초까지 고즈넉하여

    뒤를 자꾸 돌아보게 한다.

    빗물인지 눈물인지 우산을 펴야 마땅할 때쯤 산바람이 종내는 희끗희끗 눈발로 변하는 요술을 펼친다. 산사의 풍경이 졸지에 으뜸이 된다.

    청곡사 대웅전 경남 유형문화재 제51호, 석가삼존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은 광해군(재위 1608∼1623) 때에 다시 지어졌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내부에 모셔진 석가삼존불상은 광해군 7년(1615)에 만들어진 것으로 임진왜란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는 비교적 큰 불상에 속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다포계 건물이다. 가운데 칸은 옆의 양쪽 칸보다 다소 간격은 넓으나 공포가 놓인 간격은 가운데 칸과 양 옆칸 모두 같다.

    대웅전 앞 괘불대는 여는 사찰에서 볼 수 없었던 석인과 석수 조형물이 이채롭다.

    동종

    대웅전 목조석가여래삼존좌상(靑谷寺 木造釋迦如來三尊坐像), 보물 제1688호, 1615년, 석가여래(본존) 높이 170.5㎝, 문수보살(우) 높이 162.5㎝, 보현보살(좌) 높이 151㎝, 진주시 금산면 청곡사의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이다. 본존인 목조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오른쪽에 문수보살좌상, 왼쪽에 보현보살좌상이 배치되어 있다. 1750년에 작성된 개금발원문을 통해 1615년에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방형의 넓적한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 단조로우면서도 힘 있는 옷주름 등이 특징이다. 

    필자가 찍은 사진

    국가유산청에서 차용한 사진

    청곡사 목조제석천·대범천의상 (晋州 靑谷寺 木造帝釋天·大梵天倚像), 보물 제1232호, 제석천과 대범천은 원래 브라만 또는 힌두교의 신상(神像)이었으나, 대승불교 이후 불법을 지키는 신상이라 여겨 사천왕상 등과 더불어 불교미술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삼국유사에  우리나라에서는 조각상이 아닌 그림으로 전하며, 조선시대 탱화에서 주로 예를 찾아볼 수 있으나 조각상으로는 청곡사의 것이 유일하다. 사천왕상이 위엄을 나타내는 무서운 인상임에 비해 제석·대범천상은 보살상같은 자비로운 인상이다. 탱화의 경우 보살은 양손에 물건을 들고 그 기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과 얼굴이 금색인데 비해, 제석천과 대범천은 두 손을 합장한 경우가 많고 얼굴에 호분으로 흰색을 칠하고 있다. 양 손은 합장이 아니며 옷주름도 보통 탱화의 것과는 다르다. 회화로서는 조선 후기 불화에서 흔하지만, 홀로 있거나 새겨져 있는 것은 청곡사의 것이 처음이다. 조각기법은 조선 후기 양식을 따르고 있다. 국가유산청의 사진과 다르다. 

    대웅전 후불탱화 칠성도

    천정

    촛대ㅐ와 향로의 무늬가 섬세하고 화려하다

     

    청곡사 환학루(喚鶴樓), 보살이 반갑게 뛰쳐나와 차 마시러 오시라 하였는데 촬영후 시간에 쫒기고 아내 등쌀에 들리지 못했다. 눈발 날리고 연아도 카페 좋아하니 들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국보 제302호인 영산회괘불탱 모사본과 퇴계의 시 청곡사 시판이 걸려 있는데 말이다.

    종무소에도 눈발이 날린다.

    청곡사 선원

    청곡사 진영각, 칠성각, 독성각

    청곡사 나한전

    청곡사 삼층석탑, 경남도 유형문화유산, 대웅전 왼편에 서 있는 석탑으로, 2층 기단(基壇)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리고 정상에 머리장식을 얹은 형태이며 석재가 많이 닳아 있다. 기단은 윗돌 일부가 파손되었고,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이 새겨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고, 3층 지붕돌 위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 등의 머리장식이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일반적 양식을 잘 따르고 있으나, 각 부분에 나타나는 양식상의 변화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세운 탑으로 추정된다. 도선국사 창건사찰에 자주 등장하는 비보탑이라고 한다. 즉 학이 알을 품고 있도록 하기위하여 탑을 품속에 살그머니 놓아둔 자리이며 지금의 탑이 있는 곳이라 한다.

    청곡사 업경전(靑谷寺 木造地藏菩薩三尊像 및 十王像 一括). 보물 제1689호. 지장보살좌상은 무릎이 높고 폭이 넓어 앉은 자세가 안정감이 있으며, 의자상의 시왕과 범천·제석천상 등도 의자에 허리를 기대고 무릎을 내려뜨린 자세가 다양하고 자연스럽다. 이중으로 대의를 걸쳤으며, 드러낸 가슴 아래에는 승각기가 가로지르고 있다. 옷주름은 상체의 대의자락은 간략하게 직선으로 양감 있게 처리한 반면 하체의 옷주름은 곡선을 살려 장식적면서 볼륨감을 살려 두텁게 표현하였다. 장식적인 곡선의 옷주름 표현은 도명존자의 가사나 시왕의 무릎의 옷주름 등에서도 찾을 수 있다. 어린아이와 같은 상호와 신체비례와 달리 두 손은 여성스럽게 조각하였다. 조각승은 인영(印迎), 탄준(誕隼), 지변(智邊), 학염(學廉), 서명(瑞明), 법율(法律), 종탄(宗誕), 선우(善祐) 등이며 여러 조각승의 불상과 계통이 연결되는 요소가 없는 독특한 조각 형식을 하고 있으며, 전체적인 조형미와 조각수법이 우수하다. 청곡사 업경전은 다른 사찰의 명부전과 같이 지장보살을 비롯해 시왕 등 명부의 존상들이 봉안된 전각이다. 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인 지장보살삼존상이 자리하고 좌우로 시왕, 귀왕, 판관, 인왕 등 총 21구가 배치되어 있다. 지장보살좌상에서 발견된 발원문에 1657년 조성하였다.

    청곡사 업경전(靑谷寺業鏡殿)의 수호신 금강역사. 밀적금강, 나라연금강, 아금강 흄금강이다. 나라연금강은 입을 벌려 ‘아’하고 소리치는 듯한 형상을 하여 ‘아금강역사’, 밀적금강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기 때문에 ‘음금강역사’다. 1657년, 나무, 높이 220cm. 이 ‘아’와 ‘음’은 범어의 첫 글자와 끝 글자이다. 그러므로 이 금강역사의 입은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한다. 금강역사상의 특징은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무섭지 않고 약간의 민화적 형상을 취하고 있다. 머리의 둥근빛은 지혜를 상징한다. 1657년, 나무, 높이 208cm. 경남도 유형문화재 348호. 

    청곡사 적묵당

    청곡사 영산회상전

    할매산신각과 서별전

    청곡사 범종각의 범종, 용뉴, 법고, 법고를 등에 진 동물은 이름이 있을까? 목어도 다른 사찰처럼 단순한 물고기 모양이 아니다. 운판은 불기 25549년 작이니 2005년 작품이다.

    청곡사 담장

    월아산 청곡사 사적비. 월아산 기슭에 위치한 청곡사는 통일신라 경문왕 13년(873)에 진주 남강변에서 푸른 학(靑鶴)이 날아와 앉은 자리에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지었다. 임진왜란(1592) 때 완전히 소실되었던 것을 조선 광해군 4년(1612) 포우대사가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월아산 청곡사(月牙山 靑谷寺) 충장공 김덕령장군전적비. 김덕령(金德齡, 1568~1596) 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형인 김덕홍(金德弘)[?~1593]과 함께 의병을 일으켜 고경명(高敬命) 및 권율(權慄) 휘하에서 전라도와 영남 서부 지역을 방어하였다. 1594년 장문포 전투와 1595년 고성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다. 그를  배향한 사우 충장사는 광주광역시 북구 금곡동에 위치하고 있다.

     

    退溪先生過靑谷寺詩碑 청곡사를 지나며 / 퇴계 이황

     

    琴山道上晩逢雨(금산도상만봉우) 금산길 지나다가 늦게 비를 만났더니,

    靑谷寺前寒瀉泉(청곡사전한사천) 청곡사 앞 샘에서는 찬물이 솟는구나.

    謂是雪泥鴻爪處(위시설니홍과처) 인생살이는 바로 눈밭의 기러기 발자국 같다고들 하니

    存亡離合一潸然(존망리합일산연) 생사(生死)와 이합(離合)이 하나의 슬픈 눈물로 흐르네.

    *진주목였던 송재 이우(松齋 李瑀)는 퇴계 이황(退溪 李滉)의 숙부였으며, 퇴계의 셋째 형 이의(李漪)와 넷째 형 이해(李瀣)가 청곡사에서 글공부를 하고 있었다퇴계가 26년 전 형들이 공부했던 곳에 청곡사에 들르니(1533년) 넷째 형은 관직에 있어서 가끔은 만날 수가 있었으나, 셋째 형은 1년 전에 세상을 떠난 후였다

     

     

    南冥先生文集重刊于此因誦退溪先生詩用其韻謹次(남명선생문집중간우차인송퇴계선생시용기운근차) / 남명 조식

     

    退陶餘韻留靑谷(퇴도여운유청곡) 도산의 퇴계선생은 청곡사에 머무르며 시를 남겼다.

    山海眞源溢紫泉(산해진원일자천) 남명선생의 참된 근원(문집) 붉은 샘에서 넘쳐나네,

    師道百年今復煥(사도백년금부환) 스승들의 가르치심 백년이 지난 지금 다시 밝게 빛나니

    吾林此會不期然(오림차회불기연) 우리들의 이 모임은 억지로 그리된 것이 아니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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