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 신원사의 암자들
신원사 소림원(小林院)의 대웅전, 암자엔 암 자가 붙는데 원 자가 있어 낯설어 새로운 곳인가 했다. 조선 시대의 건물은 지을 때부터 용도와 권위가 있어 전(殿), 당(堂), 합(闔), 각(閣), 재(齊), 헌(軒), 루(樓), 정(亭)의 순서로 서열에 매겨졌다. 이러한 팔품계를 근거로 사찰에서는 주로 전(殿), 당(堂), 각(閣), 누(樓) 등이 사용되었다. 또한 사(寺)는 외국의 사신을 접대하는 관사였으나 스님이 머물면서 사용된 말이고, 도량(道場)은 불법을 수행하는 도장(道場)의 음역이다. 가람(伽藍)은 승려들이 수행하는 곳으로 범어 승가람마의 약자이다. 정사(精舍)는 스님들이 수행정진하는 범어로 비하라(머무는집)의 의미를 지닌 곳이다. 선원(禪院)은 스님들이 참선수행하는 곳이다. 사찰(寺刹)은 법당 앞에 세우는 당간(幢竿)인 찰(刹)에서 유래한 말이다. 사원(寺院)이란 담으로 두르고 회랑이 있는 집으로 당의 불교건축물로 사용되었다. 암자(庵子)는 큰절에 딸린 작은 절이다. 산림(山林)은 산과 나무가 있는 맑고 깨끗한 청정지역이고, 총림(叢林)은 선원. 율원. 강원. 염불원을 모두 갖춘 종합 도량이다. 아란야(阿蘭耶)는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수행하기 적당한 한적한 숲이란 뜻이다. 원(院)은 고려와 조선의 도로상에 설치된 여관으로 주(州)나 현(縣)의 관(館)과 구별된다. 건물은 원우(院宇)라고 하였다. 원은 사원에 부속되어 사원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고 승려들이 관리가 되어 맡았다. 그러나 암자는 총림에서의 율원(律院), 강원(講院). 염불원(念佛院) 등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신원사에 소림원, 보광원이라는 이름의 암자는 생소했던 것이다.
신원사 소림원의 대웅전은 석가불을 중앙으로, 좌협시 관음보살, 우협시 지장보살이다.
신원사 소림원 대웅전의 신중탱화
신원사 소림원 대웅전의 지장탱화
신원사 소림원을 찾은 가장 큰 목적은 이 때문이다. 소림원석고미래입상. 등록문화재 620호. 높이 117cm. 석고로 만든 입상으로 표면에 금칠을 했다. 근대불교조각가인 김복진(金復鎭, 1901-1940) 이 1935년 제작, 금산사 미륵전 본존불인 미륵존상(1936년 제작, 국가등록문화재619호)의 모본으로 금산사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 전통불교조각과 사실적 서양식조각기법을 접목하여 전체적인 비례감과 조형미을 살린 불상이다. 한국 근대 조소예술의 길을 낸 김복진은 조선 미술비평의 첫 스승이자 연극단체인 토월회(土月會)를 창립한 연극인이다. 안동 김씨로 대지주 가문 출신인 선생은 사회주의 조직에 가담하며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고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했다. 조선공산당이나 고려공산청년회 등 사회주의 조직에서 활동하며 일제에 대한 독립투쟁으로 5년간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에 가담한 죄로 투옥된 선생은 출옥 후 불상 조각 특히 초상조각 제작에 열정을 쏟았다. 1939년 사실주의적 기법을 바탕으로 한 '불상습작'을 원형으로 법주사의 대불 제작에 착수했으나, 이듬해인 1940년 손기정 선수를 모델로 한 선전 출품작인 '소년'을 마지막으로 남기고 요절했다. 친동생 김기진( 金基鎭, 1903-1985, 이명 김팔봉, 토월회 조직)도 KAPF 멤버였다.
김복진의 생가는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팔봉리 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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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원사 금룡암(金龍庵), 창건 미상의 무속적 정취의 암자. 계룡산의 담(潭)에서 금빛 용이 출현했다는 유래가 전한다.
신원사 금룡암의 금룡동천(金龍洞天) 측벽의 금룡벽화
신원사 금룡암 금룡동천의 칠성탱
신원사 금룡암 내부, 금룡동천은 여래나 보살을 모시는 전각이 아니므로 용궁성지인 담(潭)을 바라보는 유리관이 조성되어 있다. 좌측에 칠성탱, 우측에 미륵과 독성탱이 걸려 있다.
금룡이 승천했다는 용궁성지 안내문이 밧줄에 매달려 있다. 금룡동천의 금룡(金龍)은 황금빛을 발하는 용이고 동천(洞天)은 하늘마을 곧 신선세계를 상징한다. 전국 각지에 동천이 많기도 하구나. 소박한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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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계를 헥헥거리며 올라오는 동안 고왕암 옆에 새 암자 한 칸을 짓느라 한국인 십장 하나에 건장한 흑인청년 넷이 자재를 올기다가 정오도 안되어 점심식사하러 내려간다.
신원사 고왕암(古王庵). 충남 공주시 양화리 소재 신원사(新元寺)의 부속암자로 660년(백제 의자왕 20)에 왕명으로 창건하였다. 공주읍지에 따르면, 의자왕이 완성하지 못하였다. 당시 당나라 소정방(蘇定方)과 신라 김유신(金庾信)이 백제 침공시 왕자 융(隆)이 이곳에 피난하였다가 붙잡혔기 떄문이다. 암자 이름의 의문이 쉽게 풀렸다. 창건이후 조선초까지의 연혁은 전하지 않고 1419년(세종1)에 서함(西函)이 중건하고 1928년 청운(淸雲)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연유로 고왕암에서는 매년 10월 셋째주 일요일 오전 10시에 백제를 건국한 온조왕부터 마지막 의자왕까지 31명의 역대 왕들의 넋을 위로하는 백제 31대왕 추모문화대제를 봉행한다. 고왕암 현판은 본래 극락전에 걸려 있던 것이다. 주지인 견진스님의 '계룡산에서 자연을 노래하네' 산문시집 출간기념 현수막이 지금까지 걸려 있다.
고왕암 벽면을 게시판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춘원 이광수의 육바라밀과 주지 견진스님의 산문시집 주문안내까지 붙어 있다. 육바라밀은 열반에 이르기 위해 실천해야할 덕목으로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를 이른다.
고왕암 창호를 산새가 쪼고 뚫었다는 구멍이 몇 개 보인다. 이 구멍을 통해 들락거리며 견진스님을 친견하는 모습을 '세상에 이런 일이'를 통해서 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마침 그 곤줄박이가 스님이 출타하면서 걸어놓았을 홍시반상에 두어번 내려 앉아 쫀다. 곤줄박이 Parus varius. 참새목 박새과의 텃새. 곤줄박이의 ‘곤’은 '곱다'에서 왔겠거니 했는데 알고보니 ‘까맣다’라는 ‘곰’에서 왔으며 ‘박이’는 일정한 장소에 박혀 있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곤줄박이’는 ‘검정색이 박혀있는 새’라는 의미가 된다. 머리꼭대기에서 뒷목까지 검은색이다. 턱밑과 멱 또한 검은색이며, 뺨에는 노란색과 흰색 점이 있다. 주로 곤충류를 먹이로 하며 기타 종자와 열매도 먹는다. 올겨울을 잘 나야 할텐데...
신원사 고왕암 극락전 수미단의 삼존불은 우협시 대세지보살, 중앙 아미타불, 좌협시 관음보살이다.
신원사 고왕암 극락전 칠성탱화
신원사 고왕암 극락전 지장탱화
고왕굴, 비문은 전혀 알아볼 수 없을만큼 마모되어 있다.
신원사 고왕암 백왕전(百王殿). 미니백을 왜 여기에 걸었을까. 답사기회가 또 있으려나, 주지인 견진스님은 만날 수 있으려나. 언뜻 통도사 주요 전각 지붕밑 평방위에 소금단지인 염불화방지병(念不火防止甁)이 생각난다. 염도가 가장 강한 단오날 이를 교체하는 용왕재를 지낸다. 사(邪)를 방지하기에 교체된 소금은 집에 가져가 보관한다. 7번의 화재를 경험한 해인사는 예방차원에서 陽의 기운이 왕성한 단오날 매화산(남산) 정상에 소금묻기 행사를 시행한다.
신원사 고왕암의 산왕각
애인 육바라밀(愛人 六波羅蜜) / 춘원 이광수(春園 李光洙)
임에게 아까운 것 없이 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이 마음,
거기서 나는 보시(布施)를 배웠노라.
임께 보이고자 애써 깨끗이 단장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지계(持戒)를 배웠노라.
임이 주시는 것이면 때림이나 꾸지람이나 기쁘게 받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인욕(忍辱)을 배웠노라.
자나깨나 쉴 새 없이 그리워하고 임 곁으로만 도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정진(精進)을 배웠노라.
천하고 많은 사람 중에 오직 임만 사모하는 이 마음,
거기서 나는 선정(禪定)을 배웠노라.
내가 임의 품에 안길 때에 기쁨도 슬픔도 임과 나의 존재도 잊을 때,
거기서 나는 지혜(智慧)를 배웠노라.
인제 알았노라.
임은 이 몸께 바라밀을 가르치려고
짐짓 애인의 몸을 나투신 부처님이시라고...
육바라밀 / 견진스님
님 이라면 무엇이나 바치고 싶은 그 마음 보시가 되고
님 이라면 예쁘게 보이고자 단정하는 그 마음 지계가 되고
님 이라면 칭찬이나 비방을 떠나는 마음 인욕이 되고
님 이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 마음 정진이 되고
님 이라면 화 애(和 愛)하며 공순한 그 마음 선정이 되며
님 이라면 고통이나 기쁨을 함께하는 그 마음 지혜가 되느니라.
님 덕분에 웃고
님 덕분에 사랑하고
님 덕분에 미안해하고
님 덕분에 고마워하고
님 덕분에 함께하여야
님 의 자비가 충만하리라.